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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전체주의의 기원"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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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1906~1975),

한나 아렌트가 다양하게 저술한 책이 있는데,

그 가운데서도 대중들에게 가장 많이 읽혀진 서적들이 있습니다.

 

1. 전체주의의 기원(내용이 많아서 1,2권으로도 분류합니다)

2.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3. 인간의 조건

 

그 가운데서 "전체주의의 기원"에 대한 서평을 나눕니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보여지는 이슈들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부분들에 관해서 볼 때,

"전체주의의 기원" 이 책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생각할 것을 던지고

현재의 삶과 보여지는 현상에 대해서 더 깊이 "사유"하게 합니다.

 

되도록 쉽게 서평을 풀어내 보겠습니다.

 

<전체주의의 기원 1,2- 한나 아렌트 지음/이진우,박미애 옮김/한길사>

 

먼저 핵심 포인트 가운데 하나로 여기 보여지는 책의 배경그림을 설명하자면

전체주의의 기원 1의 그림은 "프랑스 혁명"(1792), 베르사유 궁전박물관 

전체주의의 기원 2의 그림은 "러시아 혁명", 쿠스트디예프

 

실제적으로 전체주의의 기원 1권은 반유대주의-제국주의로 흐르는 1,2차대전가운데서의 독일의 나치즘,

그 역사적 흐름과 사상적 흐름과 전쟁 가운데서 생겨나는 이데올로기인 전체주의에 관해서 깊은 서술을 하고 있습니다.

 

전체주의의 기원 2권은 제1권의 제국주의-전체주의의 부분을 계속적으로 이어주는 부분으로

약간의 러시아의 볼셰비키즘(러시아 사회주의, 일명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공산주의)에 대한 약간의 사실규정과

그보다 훨씬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전체주의"의 운동, 권력, 새로운 이데올로기와 테러리즘까지,

비록 한나 아렌트는 45년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지금의 이데올로기적 갈등과 전세계를 때때로 경악하게 하는 테러,

이런 부분에 이르기까지의 부분을 마치 예상한 것처럼 전체주의의 흐름을 궤뚫어보고 이에 관한 서술과 

이 가운데서의 "정치적 사유함"에 대하여 탁월한 해석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 감히, 합쳐서 800여Page가 넘치는 이 책에 대하여 논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었습니다. 그것을 고백합니다.

 

<나치의 거수경례>

 

정치사회적 리더라는 소수의 사람들의 교묘하고 치밀한 "전체주의적 사고"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에 대해서 일반 대중들은 쉽게 이 "전체주의적 사고"에 감염됩니다.

그것을 이용한 나치즘이 그랬고, 공산주의가 그랬습니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사회주의사회 민주주의는 각각 다른 개념입니다. 혼동하면 안됩니다)

*색으로 강조한 것에 대하여 특정정파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또한 전체주의는 대중들이 가치와 원칙으로 서로 연대하지 않고 고립될 때,

그들을 조직하려는 전체주의 정권이 득세할 수 있는 길을 열게 되며 그 소수의 정치사회적 리더는 이것을 노립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인구감소와 날로 팍팍해지는 삶 가운데서의 정서와 외로움은(외로움은 고독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전체주의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있어서는 상당한 먹잇감의 정서이고, 사람들입니다.

 

 

잠시 오늘날, 지구 전체에서, 아니 여기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깊이 관찰해 본다면,

전체주의가 어떤 형태로 흐르고 있는지 알게 되실 것입니다.

단 그것은 개인의 사유의 관점으로 저는 남겨두고 싶습니다. 제가 정의할 수도 없고, 복합적인 관점이기도 하고

각각의 추구하는 자유와 견해, 그리고 삶의 가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하나로 묶어서 사상과 표현을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 "전체주의"입니다. 그렇게만 언급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AD354.11.13~AD430.08.28), 4세기 초대교부겸 신학자, 철학자>

 

이 책 "전체주의의 기원"의 마지막 부분에

중세 초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학자겸 철학자의 아우구스티누스의 인용문이 있습니다. 그것을 소개합니다.

"시작이 있기전에 인간이 창조되었다"(De Civitate Dei, Book 12, chapter 20)

 

시간의 흐름으로 "시작-전개-절정-종말"의 형태로 흐르는 관점을 우리 모두는 배우고 알고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시작이 있기전에 인간이 창조되었다"라는 의미는

인간이 위의 "시작~종말"의 형태로 이르는 시간의 관점에, 그리고 권력과 전체주의의 관점에 종속되지 않고

특히 "시작"이라는 새로움, 희망, 자유라는 관점이 인간에게 있어서 온전히 누려야 할 부분이라는 것,

그것을 강조하고 있는 의미로 보이고 읽힙니다. 저에게는 말입니다.

 

전체주의는 "시작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고 말살하려고 합니다.

즉 인간의 기본적이고 자유로운 권리(새로움, 희망, 자유)를 허용하지 않고 권력앞에 종속시키고

그것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그러하기에 모든 인간은 그 전체주의의 망령과 통제와 억압 가운데서 저항해야 하고, 인간다움을 늘 추구해야 하죠.

 

이제 그런 가운데서 지금 보여지는 현상을 깊이 "사유"해 본다면 좋겠습니다.

 

<한반도 전도>

 

지금 대한민국을 비롯한 한반도 전체는 매우 엄중하고 중요한 한 순간, 한 순간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도 다양한 Movement(운동)과 변화의 물결과 그것을 갈구하는 사람들의 외침이 있습니다.

 

"운동이란 그 운동에 이미 동의하는 사람들끼리의 카타르시스가 아니라,

그 운동에 아직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세를 늘림으로써 세상을 바꿔나가는 일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대열에 서서 일사불란하게만 움직인다면 이미 죽은 운동이다.

운동에 수반하는 문제와 이면들을 질문하고 토론하는 일은 전선을 명료하게 만들고

운동의 생명력을 만들어낸다."

 

by 김규항,<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알마),p.106

 

보다 더 사유하고 다양하게 질문하고 토론하며,

지경을 넓혀가는 생동감이 넘쳐나는 지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전체주의의 기원" 쉽지 않은 책이었지만 너무나 많은 인사이트를 얻었던 귀한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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