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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ncent van Gogh(Netherlands)

첫 걸음마(First steps, after Millet) 첫 걸음마를 떼는 아기(여아로 추정) 밭에서 노동을 하고 있던 아버지는 아기를 보고 손을 벌립니다. "내게 오렴, 사랑스러운 아가야" 아버지는 아기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무릎을 굽힙니다. 행여 아기가 뛰어가다 넘어질까, 어머니는 뒤에서 아기를 안전하게 잡아줍니다. (아마 아기와 보조를 맞추어서 아버지에게 향하지 않았을까요?) 지금 보아도 너무나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그림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모작을 그릴 때의 고흐의 상태는 최악의 상황이었으며 결국 그해 1890년 7월에 권총자살을 시도했고(1890년 7월 27일) 그로인해 생을 마감합니다.(1890년 7월 29일) 인생은 희극과 비극이 혼재된 삶의 모습일까요? 이 그림과 고흐의 일대기를 알게되니 더욱 슬프고 안타까웠습니다. 반면에 지금 코로나19의 여..
오른쪽에서 본 방직공(1884) 1878년 빈센트 반 고흐의 나이 25세때,빈센트는 이전에 계속 공부했던 신학공부를 포기합니다. 이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요하네스 숙부의 집에 있으면서신학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를 했지만, 이내 포기하게 되고,벨기에 브뤼셀에 있던 전도사 양성소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의연수를 받았지만 결국은 전도사로 임명받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당시 빈센트에게는 그 스스로에게 소명의식이 있었는데 "가난한 자들, 굶주린 자들에게 성경말씀을 들려주기"위해자비로 벨기에 보리나주의 탄광지대로 들어가서 그곳에 있던 광부들에게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P.S : 아버지가 목사였다는 것으로 인해 당시 선교단체에서 길을 열어주었다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당시 탄광생활에 찌들어서 가난함과 영혼의 피폐함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을 보면서빈센트..
이탄 더미로 덮힌 오두막(1883년 10~11월) 네덜란드의 드렌테(drenthe),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이 곳에서 3개월을 머뭅니다. 네덜란드 북부지역에 있는 드렌테(네덜란드 북동부지역)는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우울함이 가득한 땅이었습니다. 거의 자발적으로 이곳에 오게 된 고흐,부모님과의 관계도 악화되고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 때로고흐는 이곳에서 거의 오두막만을 그립니다. 도시의 전경이란 볼 수 없는 오두막, 황무지, 운하, 수로, 이탄(연탄의 원료로 쓰이는 석탄)그리고 가난이 가득했던 곳, 고흐는 이곳에서도 테오에게 편지를 씁니다. "이곳의 풍경을 우리가 마땅히 그려야하는 방식으로 묘사하기란 불가능해, 왜냐면 이것을 표현하기에 우리의 어휘가 부족해서 그래" 이렇듯, 고흐는 이곳의 풍경, 자연에 대해서 높이 평가를 합..
씨 뿌리는 사람(1881,밀레 모작) 1878년, 25세의 반 고흐는 신학교를 그만두게 되고,벨기에의 남서부지역에 있는 한 가난한 광산촌인 보리나주,이곳에서 평신도 설교자로 생활하게 됩니다. 광산촌에서 설교를 하면서 당시 착취를 받던 광업 종사자들의피폐한 현실을 알게 되고 이에 대한 근심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냅니다. 1880년 이전까지 주로 목탄화로 그림그리기의 기본을 다진 고흐는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게 됩니다.동생 테오의 제안이기도 했고, 이 때부터 테오는 고흐를 후원하기 시작합니다. 보여지는 그림 씨 뿌리는 사람(밀레 모작)을 보게 되면,당시의 고흐의 피폐했던 현실을 여과없이 비추는 것 같습니다. , 1881.4월 완성 마치 고흐 자신인 듯 합니다.본격적인 그림에 입문하기 전,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유화의 화려한 묘사가 있는 고흐의 그..
포플러길(1884), 그리고 연애 사랑하는 테오, 네가 미슐레를 읽고 충분히 이해해서 너무나 기쁘구나.그런 책은 적어도 사랑에는 보통 사람들이 거기에서 추구하는 것 이상이 있음을가르쳐준단다. 그 책은 나에게 계시이자 복음이야.........................................................즉 여자란 남자와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또 네가 말하듯이 아직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기껏 겉으로밖에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것.그래, 나도 분명 그렇게 생각해그리고 여자와 남자는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즉 반반씩 둘이 아니라,하나의 전체가 된다고 나 역시 생각해. - 1874년 7월 31일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 1884나무에 붙인 화포 위에 유채, 99X66cm, 크륄러-뮐러 미술관, 오터를로 혼자 산책하는 ..
감옥마당(1890), 그리고 사색 답답함과 나른함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는 지금,한 그림을 보면서 공감을 하면서 마음을 다시금 잡게 됩니다. 직장에서야 분주하게 일을 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런 답답함과 나른함을 느끼지를 못할 수도 있겠지만,운전을 하다가 라디오로 뉴스를 들으면 그야말로 인내의 한계를 부르는 소식들(전 라디오로는 주로 CBS 표준FM을 듣습니다. 98.1Mhz)그 뉴스들을 들으면서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지를 늘 고민하게 됩니다. 여기서 관점이란 것은 당위적으로 흘러가는 이슈에 대한 단순한 관점을 벗어나서제가 현재 취해야 할 행동과 내면의 가치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이런 관점에 대한 고민을 늘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고흐의 그림 하나를 보게 되었습니다. 막힌 공간,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막막한 가운데서 이런저런 죄로 인..
복권판매소-(1882년 9월) "나는 수채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수채화 그리는 것을 완전히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 그러나어떤 일을 하고 있는 남자나 여자나 아이를 표현해 낼 수 있으려면,인물의 형상에 대한 지식을 갖추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내가 유달리 인물을 그리는 데 몰두했던 것은 다른 식으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빈센트 반 고흐 1882년 9월,빈센트는 네덜란드에서 당시의 헤이그의 풍경을 그려보게 됩니다.먼저는 연필과 잉크로 그림의 대부분을 그리고, 나머지는 약간의 수채화 물감을 첨가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당시에도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던 빈센트는 그림을 그린 다음, 그것을 팔 수 있는 형태로 하기위해그림의 완성도를 좀 더 주도적으로 추진하게 됩니다. 그 중에 하나의 ..
감자먹는 사람들-(1885.4) 이 그림은 빈센트가 스스로 "작품"이라고 생각한 첫번째 그림이고,그가 보낸 편지에서 여러번 "첫 작품"이라고 언급된 그림이기도 합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이 그림의 완성된 후(1885년 4월)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이 그림에 대한 소희를 여동생 빌레미나에게 편지로 밝힙니다. "감자를 먹는 농부를 그린 그림이 결국 내 그림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남을 거라고 생각해" 이런 여러가지의 상념을 담은 그림,"감자먹는 사람들"(The Potato Eaters)입니다. 그림속의 농부들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포크를 사용하긴 했지만 농사일로 거칠어진 손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그렇기에 그림이 더욱 진실되게 보입니다. 빈센트는 이 작품을 완성한 후,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밝힙니다."지나치게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