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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 Christian Andersen(Denmark)

안데르센의 사랑에 사로잡힌 시(1830년 정도) 검은 눈동자 두 개 내 시야를 사로잡더라 나의 세상, 나의 집, 나의 기쁨이어라 어린아이와 같은 영혼의 평화로움이여 그 기억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으리 - 1830년 덴마크 오덴세 근처 메리힐에서 안데르센이 쓴 시 청년기 H.C.안데르센(당시 25세)의 고독과 그것을 잊기 위한 여행과 창작의 과정중에 이전에 알게된 인쇄업자 이베르센의 미망인의 집에 초대된 안데르센, (이베르센은 안데르센의 아버지뻘로 당시 집에는 미망인과 그녀의 손녀들이 함께 거주) 그러면서도 그곳에서도 여러군데를 돌아다니며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안데르센은 한 친구의 누나에게 아주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 누나의 이름은 "리보", 당연히 안데르센은 혼자서 사랑했고 아무런 고백도 하지 못했으며, 결국 그 "리보"는 다른 남자를 ..
안데르센, 그리고 잉게만(B.S.Ingemann, 1789~1862) 덴마크 슬라겔세의 문법학교에서 지지부진한 삶의 가운데 있었던 젊은 안데르센, 그러나 외로움과 고독의 가운데서 스스로의 재능을 치우지 못했던 때에 그를 따뜻하고 반갑게 맞이해주던 이가 있었으니, 당시 덴마크의 시인 잉게만이었습니다.(B.S.Ingemann) 슬라겔세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소뢰라는 곳,(Sorø) 그 아름다운 전원의 시골마을 가운데서 말입니다. (1822년(17세)~1826년 사이(21세)) 안데르센은 자서전에서 이 때를 떠올리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행복했던 때는, 숲이 초록으로 싱그럽던 어느 일요일, 소뢰에 갔을 때다. 소뢰는 슬라겔세에서 이 덴마크마일 떨어져 있었고, 호수로 둘러싸인 숲 한가운데 있었다. 여기에 홀베르크가 설립한 귀족..
안데르센이 받은 편지 하나(1823.2) 안데르센은 평생의 은인이자 당시 덴마크 왕립극장 감독 요나스 콜린의 도움으로문법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슬레겔세와 헬싱괴르) 물론 안데르센의 타고난 성격처럼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학업에 대한 부담과 외로움,이것은 안데르센에게 두려운 마음을 안겼는데.....(하지만 안데르센은 이 두려움을 이겨내고 결국나중에 코펜하겐 대학을 졸업하게 됩니다) 그 당시 슬라겔세(Slagelse)에서 라는 신문 편집자이고,은퇴후 집에서 향학을 하는 바스톨름이라는 분의 집을 방문합니다. 안데르센은 전에부터 쓰고 있었던 작품 두 가지를 보여주고바스톨름은 이에 대해서 칭찬하고 격려하며세련된 감정과 진실된 충고를 담아 편지를 쓰게 됩니다. 젊은 친구, 자네의 서막을 잘 읽었네. 하지만 이 얘기는 꼭 해야겠네.신이 자네에게 살아 ..
코펜하겐에서의 안데르센의 고백(2)- 1821년의 말미에 오페라가수, 그리고 단역배우로까지..... 고향인 오덴세를 떠나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의 안데르센의 하루하루의 삶은 도전이 넘쳤지만,한 편으로는 가난과 외로움이 가득한 삶이기도 했습니다. 내성적이고 마음이 여린 어린시절의 그에게 있어현실의 몸과 마음의 궁핍함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습니다. 어느덧 1819년에 코펜하겐으로 와서 보내던 지난 2년여,1821년을 보내고 1822년의 새해를 맞이하기 전,그는 오디션, 단역배우로서의 잠깐의 출연과 자신을 후원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하는 때,그 가운데 너무나 지쳐 버리게 되죠. 그는 자서전에서 이 때의 자신의 내면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코펜하겐에 온 지 이 년이 지났다. 나를 위해 사람들이 모아준 돈은 다 써버렸다. 하지만 난 내가 궁핍하다는..
코펜하겐에서의 안데르센의 고백(1) 1819.9 1816년, 아버지의 사망후 3년여가 지난 1819년 9월 5일,안데르센은 14살의 나이로 고향인 덴마크 오덴서를 떠나 오페라 가수나 배우가 되겠다고아는 사람 하나 없이 무일푼으로 코펜하겐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열심히 일을 구합니다.극장에 찾아다니면서 때로는 오페라를 관람하면서안데르센은 취업을 위해 불굴의 노력을 다하지만 그 어려움은 너무나 컸습니다. 안데르센 자서전에서 이 때의 고통을 안데르센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무도 큰 상처를 받았다.코펜하겐에서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거나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이 절망의 나락에서 헤어날 길은 오로지 죽음밖에 없을 듯 했다. 나는 하나님을 찾았다.어린아이가 아버지에게 매달리듯 한줌의 의심도 없이 하나님의 손을 잡고 ..
미운오리새끼-3 그리고 생상스의 백조(Swan) 가을이 오자 숲속의 나뭇잎들이 울듯불긋 물들었습니다.그리고 겨울이 찾아오면서 나뭇잎들은 심하게 흔들리고 떨어집니다.우박과 눈송이를 드리운 낮은 구름이 드리워져 있고,울타리 위에서는 까마귀가 "까악~"하고 울어댑니다. 못생긴 새끼오리에게는 그 모든 상황이 두려운 시간이었고으스스~ 떨리는 몸은 어쩔 수 없는 약함의 모습이었습니다. 태양이 서산을 넘어가려다 구름 사이로 마지막 찬란한 빛을 발하던 어느 저녁,한 무리의 아름다운 새들이 수풀에서 날아왔습니다.못생긴 새끼오리는 여태껏 그렇게 아름다운 새들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바로 백조였습니다. 우아한 곡선을 자랑하는 목, 그리고 하얀 깃털,화려한 날개를 펴고 아름답게 노래하는 그 모습, 그리고 날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못생긴 새끼오리는 그 모습을 따라해 보았습니다..
미운오리새끼-2 "내가 못생겨서 모두들 날 싫어하는거야"못생긴 새끼오리는 이렇게 생각하며 눈을 꼭 감고 다녔습니다.어떤 한 늪에서 지치고 피곤해진 못생긴 새끼오리는 잠시 쉬게 되었는데도저히 잠은 오지 않더군요. 그래서 밤을 지샙니다. 다음날 아침,잠에서 깬 들오리들이 못생긴 새끼오리를 발견하고 말합니다."넌 누구니?" 못생긴 새끼오리는 예의를 갖추어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앉아 있었지만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정말 못생겼구나. 하지만 우리 가족과 결혼하지만 않는다면 상관없어" 가엾은 오리! 못생긴 새끼오리는 결혼 같은 것은 생각해 본적도 없었습니다.그저 갈대 속에 누워 물을 마실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했습니다. 늪에 도착한 못생긴 새끼오리가 도착한 지 이틀째가 지났을 때,어떤 기러기새끼 두마리가 다가옵니다.그들은 이렇게..
미운오리새끼-1 드디어 그 큰 알이 깨지고 새끼가 "찍찍" 울며 천천히 밖으로 나왔습니다.정말 크고 못생긴 새끼였습니다. 어미 오리는 그 새끼를 보며 말했습니다. "굉장히 크구나, 다른 새끼들과 전혀 다르네, 오리가 아니라 칠면조 새끼인지도 모르겠네?하지만 뭐, 곧 알게 되겠지,물 속에 들어가 보면 알게 될거야" "자세히 보니까 다리를 잘 사용하고 몸가짐이 곧구나, 틀림없는 내 새끼야, 잘 뜯어보면 예쁜 구석이 있어" 다음날은 날씨가 화창하여 녹색 우엉 잎 위로 햇살이 밝게 쏟아졌습니다.어미오리는 새끼들을 이끌고 호수로 내려갔습니다. 어미오리가 텀벙! 하고 먼저 물 속으로 뛰어들자 뒤를 이어 새끼 오리들이 차례로 뛰어들었습니다. 물이 머리위를 덮치자, 새끼들은 금방 머리를 내밀고 노를 젓듯이 다리를 움직이며 헤엄을 쳤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