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그리고 그 때의 핀란드는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이(1917) 20~25년이 지난 상황,
당시 스웨덴을 제외하고 북유럽의 덴마크, 노르웨이, 그리고 핀란드는
독일의 영향권에 있었으며, 특히 핀란드는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했지만
2차대전때는 동시에 공산화된 소련과의 대립을 해야 하는 지정학적으로 너무나도 어려운 위치였습니다.
전쟁은 현실의 모든것을 폐허로도 만들지만 더욱 어려운 상황은
미래의 꿈마저도 앗아가는 무서운 현실입니다.
P.S : 개인적으로 저는 모든 전쟁을 반대합니다.(비폭력저항, 비폭력대화에 신념이 있습니다)
핀란드는 20세기의 유럽의 다양한 환경 가운데서
그 참상을 겪고 때로는 힘겨운 배상까지 치루어야 하는 지독한 역사를 지나게 됩니다.
그 역사의 아픔을 겪고 난 약 40년 정도 후의 핀란드 의회(국회),
핀란드 의회에 미래위원회가 생기게 된 것은
핀란드의 미래정책의 필요성에 당파를 떠나 모든 의원들의 공감대가 형성된 환경이 주요했습니다.
당을 가리지 않고 의원들은 정말 끈질긴 노력을 했습니다.
미래를 대비하자는 논리,
종합적 미래정책에 대한 포럼을 창설하자는 논리
이런 분위기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1986년,
핀란드 의회의 전체 200명의 의원중 133명이 입법기구의 일부러 "미래연구반"을 만들자는 제안에 서명합니다.
문서도 만들고 토의도 하면서 분위기가 만들어졌는데 이상하게도 결과가 없었습니다.
1992년,
166명의 의원들이 법안을 만들었지만 실제 표결에선 부결됩니다.
이 때 제일 활발한 활동을 두 명의 의원이 있는데
초대 미래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에로 팔로헤이모, 그리고 마르띠 티우리 이 두분이 특히 열성적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리고 이 때 결정적인 도움을 준 기관이 핀란드 헌법위원회(의회의 위원회인데 헌법적 통제가 가능한 구조)에서
"의회와 행정부간에 국가의 장기적인 문제와 대안에 대해 토의하고 미래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국가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권고안을 발표함으로서 핵심적으로 미래위원회 탄생의 아주 중요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여러가지의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야 비로서 "미래위원회"가 제대로 탄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핀란드 의회는 다당제로 유명합니다.
주류를 이루고 있는 보수당이나 녹색당을 비롯해 사회당 등 수십 개의 정당이 존재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진정한 다당제는 가능할까요?)
연립 정부 (124) 중도당 (49) 진정한 핀란드인 (38) 국민연합 (37) 야당 (76) 사회민주당 (34) 녹색 동맹 (15) 좌파 동맹 (12) 스웨덴 민족당 (10) 기독민주당 (5) <2016 현재 핀란드 의회구성> P.S : 기독민주당이 여기도 있네요. |
그러나 그들이 추구하는 이념을 떠나 미래정책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기 때문에 미래위원회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다당제의 각 정당, 정파의 차원을 떠나 미래정책의 필요성에 대한 초당적이고 분명한 의지,
한국도 이런 상황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다음에는 "핀란드 미래위원회의 의의"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서술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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