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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끄적거림~

지금, 절실한 한나 아렌트의 사유(思惟)의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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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만 뜨면 온통 중국발 신 코로나 바이러스 뉴스

그리고 4.15 총선 관련 이런저런 정치권 뉴스,

검찰발 이런저런 소식-뉴스,

온갖 뉴스(News)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뉴스(News)의 의미는

다양한 미디어 매체를 통해(TV,라디오, 인터넷등)

그날그날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주는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데,

(참고 나무위키)

사실 지금의 뉴스는 그 순수성을 잃어버린지 오래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1. 각 방송국의 편집자주, 이익의 목적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2. 인터넷(특히 유튜브)에서의 광고수익을 위한 가짜뉴스가 판칩니다.

3. 통합보다는 분열의 개체화를 의도하는 듯한 뉴스가 많아진 현실입니다.

 

이런 가운데서 저는 다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를 찾습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

 

제가 집중하면서 읽은 한나 아렌트의 명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가운데

유명한 구절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이것을 본문의 내용을 가지고 좀 더 자세하게 표현해 본다면,

 

"아르헨티나나 예루살렘에서 회고록을 쓸 때나 검찰에게 또는 법정에서 말할 때 그의 말은 언제나 동일했고,

똑같은 단어로 표현되었다.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speak)은

그의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think),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거짓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말(the words)과 

다른 사람들의 현존(the presence of others)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reality as such)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 106쪽, 제3장 유대인 문제 전문가중  

 

이 1963년의 저서가 60여년정도가 지나가려는 오늘의 상황과 어찌그리 잘 부합되는지 놀랍습니다.

 

<우리시대의 미디어란?>

 

한나 아렌트는 또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새로운 세대를 포함하여 모든 인간은, 자신이 끝없는 과거와 끝없는 미래 사이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아는 한,

사유의 길을 새롭게 탐구하고, 또 힘써 새 길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이 말이 얼마나 저에게 자극을 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저에게 무엇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를 생각하며,(특히 북유럽 살롱)
지금의 고독과 지루함과 답답함과 "아무것도 하지 못한듯한 허무한 시간들"을 극복하며
저 스스로를 좀 더 위로하고 격려하고 싶습니다~

 

지금 저에게는 한나 아렌트의 사유(思惟)의 방식과 삶의 철학이 너무나 절실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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