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유적지 견학기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어느덧 다산앓이(?)에 빠진 저입니다.
정말 200년전으로 가서 1816년 6월,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정약용 선생에게 가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또 듣고 그런 시간을 가지고 싶네요~
암튼 두 번째 견학기를 시작해 봅니다~^^
오늘도 비교적 상세한 설명을 더하려 합니다
(다시 점검하고 보니 모든 사진마다 그러지는 못했군요~)
정약용 선생의 동상입니다.
특이한 것은 앉은 동상에 책을 펼쳐 놓은 모습입니다.
얼마나 정약용 선생이 책과 함께 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12년의 관직생활, 그리고 18년의 유배생활, 그리고 만년의 18년,
이 30년의 시간 가운데서 정약용 선생은 독서와 학문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고 늘 정진했습니다.
즉 이 동상은 정약용 선생의 평소의 독서하는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옆에는 서화관이라고 정약용 선생이 쓰신 글씨체를 직접 쓰면서 체험하는 공간이 있는데
아쉽게도 지금 시간은 운영하지 않더군요.
사진에서처럼 매주 월요일 오후2시~4시에 운영됩니다.
이제 정약용 선생의 묘소를 직접 보기 위해 올라가려는 길입니다.
여기는 다산 정약용 선생과 그 부인 홍씨 부인의 합장릉입니다.
정약용 선생이 강진 유배지에서 여기 마재의 고향집(남양주시 능내리)으로 돌아온 후,
18년을 사신 후에, 1836년 2월 22일에 세상을 마쳤는데,
때마친 그날은 홍씨 부인과 혼인한 지 60주년이 되는 회혼(回婚)일이었습니다.
홍씨부인도 2년후 세상을 떠나 여기에 합장이 되었습니다.
그 60년의 세월 동안 오랜 유배생활로 살아서도 이별의 슬픔이 깊었고,
슬하에 9명의 자식을 두었는데(아들 6, 딸 3)
그 가운데서 여섯 자식이 어린나이로 죽었습니다.(천연두와 홍역으로 아들 4, 딸 2을 잃음)
자식을 먼저 보내는 가슴맺히는 이별의 고통으로 마음고생이 상당했습니다.
특히 이 가운데서 막내아들을 강진 유배지에서 생활을 할 때 잃게 되어서(1802년, 마마)
자식의 죽음을 지켜보지 못한 아버지의 심정에 굉장히 상심하고 괴로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부부는 서로를 의지하고 편지를 통한 안부로 서로 염려하고 애틋함을 나누었습니다.
하피첩에 대한 이야기도 있죠. 강진 유배생활중 혼인때 해왔던 다홍치마 5쪽을 부인이 보냈더니
그것을 잘라서 두 아들(글)과 딸(그림)에게 주면서 그리움을 표현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책에서 읽고 여기 묘소를 보기에 더욱 마음이 숙연해지더군요.
부부란 뭘까, 사랑이란 뭘까, 두 사람이 서로를 얼마나 신뢰하고 사랑하고 의지했을까,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는 정약용 선생의 생가 여유당(與猶當)입니다.
여기 보여지는 방은 본가가 아닌 사랑방 별채로
객이나 다산을 찾아오는 관료, 벗들이 묵었던 방으로 추측됩니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정문이고
왼쪽에 보이는 방들은 이전의 사랑방 별채의 모습입니다.
가운데 땔감을 쌓아두었고 난방용과 조리를 할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습니다.
방은 여기서 보니 총 5개의 방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소를 키우던 외양간과 농기구들을 쌓아두던 창고가 이렇게 있었습니다.
정약용 선생의 여유당 생가 안채입니다.
보통 사극에서 보았던 구조처럼 마루와 안방구조,
맨 왼쪽은 부엌이고 오른쪽은 다른 방으로 이루어진 지극히 평범한 구조입니다.
정문과 마주하게 되는 후문입니다.
위치상 동서로 이루어진 출입문의 구조인데,
그만큼 소통을 중시했을 것 같은 정약용 선생과 그 가정의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이렇게도 사진을 담아보았습니다..
저기 보이는 다섯자의 부분은 "신 하피첩"이라고
앞서 말씀드린 5자의 치마를 각 병풍마다 그림과 글로 표현한 전시물이었습니다^^
참고로 다산 정약용선생의 생가는 1925년 여름 "을축(乙丑)대홍수"로 유실되었는데,
다행히 선생의 저술은 건져내었습니다.
계속적으로 복원이 이루어졌고 그 복원이 1986년 정도에 거의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1974년에 세월진 여유당 비석입니다.
저 글씨를 쓴 분은 당시 정약용 선생의 후손인 정일권 국회의장입니다.
(정확히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에게 국회에서 X물세례를 받은 분 당시 국무총리,1966년)
당시 경기도 지사는 조병규 관선지사였습니다.
정약용 선생의 여유당 생가를 멀리더 보면
이렇게 큰 아름드리 나무가 있습니다.
옆에 사당도 있었는데 문이 잠겨 있어서 사진을 담지는 않았습니다.
여기를 다녀오면서 저는 어느덧 다산앓이(?)에 빠진 것 같습니다.
책도 읽으면서 인터넷으로 여러 정보들도 계속 보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중고서점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에 관한 책을 또 구입했습니다.
P.S: 이 서적들은 지금 대한민국에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은 필수로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공무원은 정말 올바르고 깨끗한 목민관이 되어야 하는데, 지금 현실은 그렇지 않은 듯 합니다
상태가 새책처럼 좋은 중고 서적 3권인데
원래의 가격 45,300원의 가격의 책을 단돈 19,000원에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거의 다 읽고 있는 "다산 평전"(백성을 사랑한 지성)을 다 읽고 나면,
이 책들도 천천히 보려고 합니다.
(요즘 읽을 책이 참 많군요^^)
앞서도 언급했지만 200여년전으로 돌아가서
다산 정약용 선생님을 꼭 뵙고 싶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200년전의 조선사회의 현실(세도정치, 백성의 궁핍한 삶)이
오늘날과 별다른 것 같지 않아서 우울하기도 합니다.
이 시대에 정약용 선생같은 백성을 사랑하고 학문에 정진하며 책과 벗을 삼는,
그리고 어떠한 고난과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존경할 만한 분이 계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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