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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 Christian Andersen(Denmark)

코펜하겐에서의 안데르센의 고백(2)- 1821년의 말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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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가수, 그리고 단역배우로까지..... 

고향인 오덴세를 떠나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의 

안데르센의 하루하루의 삶은 도전이 넘쳤지만,

한 편으로는 가난과 외로움이 가득한 삶이기도 했습니다.


내성적이고 마음이 여린 어린시절의 그에게 있어

현실의 몸과 마음의 궁핍함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습니다.


어느덧 1819년에 코펜하겐으로 와서 보내던 지난 2년여,

1821년을 보내고 1822년의 새해를 맞이하기 전,

그는 오디션, 단역배우로서의 잠깐의 출연과 

자신을 후원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하는 때,

그 가운데 너무나 지쳐 버리게 되죠. 


<미국 뉴욕 Central Park에 있는 안데르센 동상>


그는 자서전에서 이 때의 자신의 내면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펜하겐에 온 지 이 년이 지났다. 나를 위해 사람들이 모아준 돈은 다 써버렸다. 하지만 난 내가 궁핍하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게 부끄러웠다. 무역선 선장이던 남편이 죽은 뒤 혼자 사는 어떤 부인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집에서 잠을 자고

아침을 먹었다. 힘들고 우울한 날들이었다. 그 부인은 내가 저녁은 다른 집에서 잘 얻어먹는 줄로 알았지만 나는 그 시각에 왕립공원

벤치에 앉아 작은 빵 하나로 끼니를 떼웠다. 아주 드물게 코펜하겐에서 가장 싼 식당에서 가장 싼 음식을 사먹기도 했다.

그것도 큰 용기를 내야할 만큼 가난했다. 외로움에 떨었다.


하지만 내 삶의 무게를 순전히 나 혼자 힘만으로 버틴 건 아니었다. 내게 친절을 베푼 모든 사람들은 모두 나의 진실한 친구였다.

또 하나님은 내 작은 방에 늘 함께 있었다. 수많은 밤 기도를 할 때마다 나는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에게 물었다.


"언젠가 곧 좋아지겠죠?"


-안데르센 자서전( 이경식 옮김, Human&Books) 중,



안데르센이 1831년 봄, 난생 처음 덴마크를 떠나 독일북부의 뤼베크와 함부르크로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문법학교에서 공부하고 코펜하겐 대학을 다니게 되는 학업을 이루는 데까지의 1819년에서 1831년 봄까지의 12년여의 기간,

즉 10대 중반에서 20대 중반에 이르는 감수성이 충만하고 상처받기 쉬운 청소년기에 초기 청년기,

그가 짊어져야 했던 가난과 외로움은 아직 어린 안데르센에게 있어 너무나 큰 버거움이었습니다.


그의 하나하나의 그 때의 행적을 읽으면서 제 마음도 아립니다.


그것을 담담하게 자신의 자서전에 기록할 수 있었던 안데르센의 삶,


저는 제 인생의 어두운 터널같은 부분이 다가올 때, 그리고 그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

이렇게 담담하게 내면을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안데르센 동상이 있는 덴마크 코펜하겐시 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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