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운동화는 신발끈이 있습니다.
(어떤 디자인은, 또다른 어떤 것들은 신발끈이 없는 신발도 있습니다)
새로운 운동화를 신고 첫 걸음을 하기전에
우리모두는 반드시 운동화끈을 자기의 발에 맞추어서 단단하게 묶고
그 다음에 걷거나 뛰거나 그런 움직임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단단히 묶고 자기발에 최적화를 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신발끈이 느슨해지고 풀어지기까지 합니다.
당장 운동화, 신발을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계속 걸어야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운동화 신발을 버리고 새것으로 바꿔신으려고 두리번합니다.
아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걸음을 멈춰버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길이 있습니다. 그 길을 걸어야 합니다.
바로 인생의 길(The way of Life)입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길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좀 더 장거리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어떤 이들에게는 단거리가 될 수도 있고, 천차만별로 그 거리와 길의 유형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핀란드 출신 사회학자인 에밀리야 라티(Emilia Lahti)는 이리 말합니다.
"시수(Sisu)는 산을 뛰어 올라갈 수 있는 체력이라기보다, 오히려 한 발을 다른 발 앞으로 내딛게 해 주는 힘이다"
길의 상태에 따라, 발에 신게 되는 운동화 신발의 상태에 따라
길을 걷게되는 모두는 당연하고도 분명히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 전체적인 체력에 목매다는 게 아니라, 좀 더 지혜로우면서도 실제적인 방법이 필요한데,
그 가운데 가장 먼저 해 볼 수 있는 것은 운동화 신발끈을 다시 묶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일들 가운데 하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난관과 마주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보여지는 난관에 대해 전체를 훌쩍 넘어버리려고 무리하거나 제 풀에 지쳐 아무것도 못하고 무기력해지는 것,
글로써는 이렇게 평면적으로 표현을 하지만, 실제 그 난관이 입체적으로 스스로에게 다가왔을 때, 어떨까요?
이럴 때, 시수(Sisu)가 필요합니다.
훌쩍 상황을 뛰어넘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신고 있는 운동화 신발의 풀어진 끈을 다시 묶는 용기,
그 다음에 아무렇지도 않은듯 다시 걷거나 뛰는 것,
안타까움과 비통한 소식에 정말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가까운 인간관계에서, 환경에서 많이 보게 됩니다.
이 때, 제가 스스로 실행하고 주위에 말하고 나눌 수 있는 것은 저의 신발끈을 묶고,
아니면 다른 이들의 신발끈을 묶어준 다음 함께 걷거나 뛰는 것,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드라마에서 공유가 이민정의 신발끈을 묶어주는 장면, 참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장면이죠.
여기서 뭔가 에너지가 느껴집니다. 이처럼 지금은 그 에너지를 서로가 발산하고 나눠줄 때가 아닐까 해요.
그 에너지를 저는 시수(Sisu)라고 생각합니다.
저기 핀란드의 사회적 감성이 아니라, 우리가 취하고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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