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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디자인 이야기

문화체육관광부의 사업에서 "K" 브랜드명을 제외할 예정 문화체육관광부는 현재 박근혜정부에서 줄기차게 사용되는 "K"라는 로고를 점차 빼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그동안 최순실 국정농단의 부분에서 자주 등장했던 "K-Sports" 그리고 "더블루K"등국책사업에 사용된 "K"로고의 이미지훼손이 커서 이를 두고 정부에서 판단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이미 초창기에 저 같은 경우는 예상을 하기도 했습니다.이전 게시물 가운데서도 아마 "K"라는 것을 붙인 문화컨텐츠가 거의 몰락할 것 같다는 예상을 했었는데,그 예상이 맞아들어 가고 있는 현실이네요. #이전 게시물 : 진흙탕 싸움 가운데서 본질을 생각해보다 (클릭하시면 연결됩니다) 현재 문화, 체육, 관광의 분야에서 줄기차게 사용되어 한류를 상징했던 "K"의 사용이 잠정 중단된 상황입니다.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전에 문화체육관..
문화예술, 문화마케팅 부분으로 일을 할 수 있을 건인가.... 지루하고도, 한숨이 나오고도, 분노하게 되는 이 현실,블로그에 여러번 언급을 했습니다만, 전 문화예술 쪽으로 전에 오랜기간 일을 했습니다.지금도 짬짬히 그 부분에 관해서 기획서를 준비하고 있고 업데이트 하고 있지만,솔직히 거의 한국에 있어서 문화예술의 기반이 무너졌다 생각합니다. 기존의 관행도 어려운데, 이번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서 말이죠그래서 동력을 상당히 상실했고, 아예 그 쪽 일을 접을까......이런 갈등도 하는 중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두껍고도 아주 깊은 책들을 꼼꼼하게 읽으며 이론을 쌓아나가고,직접적인 기획, 경쟁PT, 다양한 퍼실리테이션등을 통해서 실무의 경험도 쌓아나가고 있었는데,그 모든 동력을 현재 상당부분을 상실한 느낌입니다. 저 스스로가 험난한 예술가의 길을 걸어왔..
송성각 전 한국콘텐츠진흥원장의 부실 이력서,지원서 문화계 황태자라고까지 불리던 차은택씨가자격미달의 인사를 앉힌 대표적 사례, 지금으로부터 2년여전,콘텐츠진흥원장 공모 당시 2014년 12월4일 마감일 전,송성각씨의 이력서가 다급하게 제출됩니다. 물론 이력서와 기본적으로 포트폴리오, 경력증명서등이 필요한데,이게 사실 더 기가 막힌 것이죠. 더불어민주당 손혜원의원이 확보한 송성각씨의 이력서는 이와 같습니다. 송 전 원장은 수상 경력과 사회공헌, 주요 저서 및 논문 등을 기재하는 부분을 1차 서류 심사 지원자 13명 중 유일하게 수기(手記)로 2장만 기재했습니다. 이게 경력증명서이자 포트폴리오겠죠. 콘텐츠진흥원의 성격상 더욱 더 짜임새있는 서류지원이 필요했을테고 일목요연하게 볼 수있는 지원서와 각종 자료들이 요구되었을텐데,송성각 전 콘텐츠진흥원장의 이런 허접..
왜곡되어 가는 K 브랜드 먼저 이 글을 블로그에 남기기 전에제 블로그에 있는 K-Classic의 여러 포스팅한 글들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쓴 글에서 저는 마지막에 이렇게 밝혔습니다. "솔직히 지금은 "K"라는 가치에 대해서 저 스스로도 의문을 답니다." 지금 우리가 자주 보게 되는 K 브랜드가 있습니다. K-팝, K-아트, K-문학, K-푸드, K-뷰티, K-비어, K-클래식, K-오페라, K-투어, K- 의료, K-호텔, K-피쉬......(K-Classic, K-Opera 이것도 들어가네요) K 브랜드는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용어인 ‘브랜드’가 팝, 아트, 문학, 푸드, 클래식, 호텔, 투어 등의 문화 영역으로 확산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문화마케팅을 공부했을 때,문화도 하나의 상품이란 것을 ..
문화마케팅? 자선? 필란트로피? 아주 느릿느릿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관해서 그것을 함께 논하고 있는 어떤 분과 통화를 했습니다. 대화의 일부가 있고, 익명으로 논합니다. "민우씨, 민우씨의 기획서를 제가 기업체에 계신분에게 보여주었는데 이거 갈아엎어야 할 것 같아요" "네? 그게 무슨 말인가요? 갈아 엎다니?" "내용이 기업체에 제안할 정도의 내용이 아니에요, 제가 봐도 그래요" "아 이거는 지금 기업체에 제안하려는 것이 아니라 oo씨와 제가 만나서 논의하고 작성해야 하는 거에요" 즉 플롯을 잡아놓는 단계의 초기 기획서를 보여주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보여주었다는 기업체의 이름을 듣는 순간 울컥했습니다. 이번에 K스포츠재단, 미르재단에 거액을 지원한 기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좀 날카롭고 예민하게 반응을 했네요. 물론 시간이 지나서 ..
엘 시스테마, 그리고 베네수엘라(4) 베네수엘라의 현실과 한국 앞서 시리즈의 첫번째 포스팅에서 현재의 베네수엘라의 현실을 언급했습니다.(엘 시스테마 그리고 베네수엘라(1))현재 베네수엘라는 정부의 무능으로 인해 정치,사회,경제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국제 뉴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브렉시트(Brexit : 영국의 유럽연합 이탈)에 가려져서베네수엘라의 현실이 초기에 이슈화가 되었다가 사라졌는데,분명 지금의 베네수엘라는 엄청난 소용돌이에 빠진 상태입니다. 한 때 저는 여기 베네수엘라로 음악 관련 아웃리치(Outreach)를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아웃리치 : 찾아가는 봉사활동)앞서 말씀드렸던 베네수엘라에 계신 목사님을 통해서 더욱 정보를 얻고기획하려고 했었거든요~그래서 관련 자료들도 모아놓고 그랬습니다. 혹 베네수엘라가 어디 위치했는지 모르셨던..
엘 시스테마, 그리고 베네수엘라(3) 엘 시스테마에 대해서 예전에 정리해 놓은 글입니다. About El Sistema 엘 시스테마는 어떻게 음악 교육 프로그램이 훌륭한 음악가들을 키워내는 동시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많은 아이들의 인생 항로를 극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는 증명된 모델이다. 베네수엘라 엘 시스테마는 에딕슨 루이즈(Edicson Ruiz, 17세에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더블베이스 주자가 됨)와 구스타보 두다멜(Gustavo Dudamel,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등 세계적인 음악가들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교향악단(Simon Bolivar Youth Orchestra)을 육성해냈다. 많은 학생들은 2세 또는 3세의 어린나이에 “뉴클레오(nucleo)”라고 불리는 각 지역에 있는 엘..
엘 시스테마, 그리고 베네수엘라(2) 범죄율이 높기로 악명높은 남미에서도 위험하기로 손꼽히는 베네수엘라의 수도 카라카스, 아이들이 “열 다섯이면 마약을 하고, 총을 손에 쥐고, 석 달 뒤 거리에서 시체로 발견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가난과 폭력의 땅”에서 1975년 경제학자이자 피아니스트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11명으로 시작한 “엘 시스테마”는 35년 후 지금은 전국적으로 190여개 센터에 26만여명이 함께하는 국가적인 프로젝트로 성장했습니다.(2011년 현재) 이 프로그램은 마약과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된 빈민 아이들을 구해준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프로그램으로 국제 무대에 선 사람으로는 구스타보 두다멜, 에딕손 루이스, 호엔 바스케스, L. 미겔 로하스, 에드워드 풀가르, 나탈리아 루이스 바사 등이 있습니다. 무엇이 이 프로그램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