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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2018년 예술가 처우가 이랬습니다. 한 때, 저도 예술가였고 예술가를 위한 펀드레이징을 기획, 프로그래밍하기도 했고, 예술가들을 위한 코칭을 기획, 프로그래밍하기도 했고, 문화예술마케팅에 관해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K-Classic"을 함께 론칭, 제안을 하기도 했고, (특히 핀란드 독립100주년에 맞춘 K-Classic in Finland) 즉 이런저런 문화예술과 관련해서 기를 쓰면서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해보고 제안하고 그랬습니다. 예전의 일이지만 말입니다. 오늘자(12.17일) 서울신문기사에 '예술은 길다'며 버텼는데..난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라는 기사 이 기사를 보면서 그리고 통계를 다시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엇에 집중하고 창작을 할 수 있는 예술가는 얼마나 위대한 사람들일까요, 그런데 정작 그 예술가..
오른쪽에서 본 방직공(1884) 1878년 빈센트 반 고흐의 나이 25세때,빈센트는 이전에 계속 공부했던 신학공부를 포기합니다. 이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요하네스 숙부의 집에 있으면서신학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공부를 했지만, 이내 포기하게 되고,벨기에 브뤼셀에 있던 전도사 양성소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의연수를 받았지만 결국은 전도사로 임명받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당시 빈센트에게는 그 스스로에게 소명의식이 있었는데 "가난한 자들, 굶주린 자들에게 성경말씀을 들려주기"위해자비로 벨기에 보리나주의 탄광지대로 들어가서 그곳에 있던 광부들에게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P.S : 아버지가 목사였다는 것으로 인해 당시 선교단체에서 길을 열어주었다는 스토리가 있습니다. 당시 탄광생활에 찌들어서 가난함과 영혼의 피폐함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을 보면서빈센트..
복권판매소-(1882년 9월) "나는 수채화를 좋아한다. 그래서 수채화 그리는 것을 완전히 그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 그러나어떤 일을 하고 있는 남자나 여자나 아이를 표현해 낼 수 있으려면,인물의 형상에 대한 지식을 갖추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내가 유달리 인물을 그리는 데 몰두했던 것은 다른 식으로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빈센트 반 고흐 1882년 9월,빈센트는 네덜란드에서 당시의 헤이그의 풍경을 그려보게 됩니다.먼저는 연필과 잉크로 그림의 대부분을 그리고, 나머지는 약간의 수채화 물감을 첨가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당시에도 지독한 가난에 시달렸던 빈센트는 그림을 그린 다음, 그것을 팔 수 있는 형태로 하기위해그림의 완성도를 좀 더 주도적으로 추진하게 됩니다. 그 중에 하나의 ..
알퐁스 도데의 "별" 그리고 순수함..... 먼저 이 그림은 그 유명한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작품입니다.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한 직원이 생일 선물로 저 그림액자를 선물로 줘서 집에 걸어놓았습니다.(처음에는 제 방 출입문, 지금은 거실에...) 프로방스, 프로방스 말할 때제가 떠오른 단 한 가지는 알퐁스 도데의 "별"이라는 동화였습니다.학창시절 국어시간에 배운 것중에 가장 좋았던 작품이기도 했고,생떽쥐베리의 "어린왕자"와 더불어서 제가 손에 꼽는 작품이니까요. 예리하신 분들은 두 그림의 공통점을 발견하셨을 텐데,자세히 보시면 목동과 스테파니의 그림이 똑같지요?^^ 순수하고 풋풋한 사랑을 언제나 간구합니다.그렇기에 이 "별"이라는 알퐁스 도데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늘 설레이는 군요. "하지만 모든 별들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