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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르센 자서전

안데르센, 그리고 잉게만(B.S.Ingemann, 1789~1862) 덴마크 슬라겔세의 문법학교에서 지지부진한 삶의 가운데 있었던 젊은 안데르센, 그러나 외로움과 고독의 가운데서 스스로의 재능을 치우지 못했던 때에 그를 따뜻하고 반갑게 맞이해주던 이가 있었으니, 당시 덴마크의 시인 잉게만이었습니다.(B.S.Ingemann) 슬라겔세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소뢰라는 곳,(Sorø) 그 아름다운 전원의 시골마을 가운데서 말입니다. (1822년(17세)~1826년 사이(21세)) 안데르센은 자서전에서 이 때를 떠올리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라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행복했던 때는, 숲이 초록으로 싱그럽던 어느 일요일, 소뢰에 갔을 때다. 소뢰는 슬라겔세에서 이 덴마크마일 떨어져 있었고, 호수로 둘러싸인 숲 한가운데 있었다. 여기에 홀베르크가 설립한 귀족..
안데르센이 받은 편지 하나(1823.2) 안데르센은 평생의 은인이자 당시 덴마크 왕립극장 감독 요나스 콜린의 도움으로문법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슬레겔세와 헬싱괴르) 물론 안데르센의 타고난 성격처럼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학업에 대한 부담과 외로움,이것은 안데르센에게 두려운 마음을 안겼는데.....(하지만 안데르센은 이 두려움을 이겨내고 결국나중에 코펜하겐 대학을 졸업하게 됩니다) 그 당시 슬라겔세(Slagelse)에서 라는 신문 편집자이고,은퇴후 집에서 향학을 하는 바스톨름이라는 분의 집을 방문합니다. 안데르센은 전에부터 쓰고 있었던 작품 두 가지를 보여주고바스톨름은 이에 대해서 칭찬하고 격려하며세련된 감정과 진실된 충고를 담아 편지를 쓰게 됩니다. 젊은 친구, 자네의 서막을 잘 읽었네. 하지만 이 얘기는 꼭 해야겠네.신이 자네에게 살아 ..
안데르센 자서전(내 인생의 동화) 2018년은 안데르센 탄생 213주년,많은 사람들이 동화를 떠올릴 때 쉽게 언급하게 되는 인물, "미운오리새끼",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등많은 이들에게 인상적으로 기억되는 동화를 쓴 동화작가로많은 이들이 안데르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여기 "안데르센 자서전(내 인생의 동화)"은1871년 영국에서 처음 출간된 안데르센의 자서전을 기본으로 한 것으로1867년 안데르센의 고향 덴마크 오덴세의 명예시민으로 추대되는 장면,186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의 세번째 자서전을 출간하기까지의 내용이 전체 880여 Page를 통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여러가지의 생각이 들게 하는 자서전의 내용,그 느낌을 잠시 나누어봅니다. 안데르센 자서전 목차 1부 놀라운 이야기의 탄생 (1805년 4월 ~ 1..
코펜하겐에서의 안데르센의 고백(2)- 1821년의 말미에 오페라가수, 그리고 단역배우로까지..... 고향인 오덴세를 떠나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의 안데르센의 하루하루의 삶은 도전이 넘쳤지만,한 편으로는 가난과 외로움이 가득한 삶이기도 했습니다. 내성적이고 마음이 여린 어린시절의 그에게 있어현실의 몸과 마음의 궁핍함은 너무나 큰 고통이었습니다. 어느덧 1819년에 코펜하겐으로 와서 보내던 지난 2년여,1821년을 보내고 1822년의 새해를 맞이하기 전,그는 오디션, 단역배우로서의 잠깐의 출연과 자신을 후원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하는 때,그 가운데 너무나 지쳐 버리게 되죠. 그는 자서전에서 이 때의 자신의 내면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코펜하겐에 온 지 이 년이 지났다. 나를 위해 사람들이 모아준 돈은 다 써버렸다. 하지만 난 내가 궁핍하다는..
코펜하겐에서의 안데르센의 고백(1) 1819.9 1816년, 아버지의 사망후 3년여가 지난 1819년 9월 5일,안데르센은 14살의 나이로 고향인 덴마크 오덴서를 떠나 오페라 가수나 배우가 되겠다고아는 사람 하나 없이 무일푼으로 코펜하겐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열심히 일을 구합니다.극장에 찾아다니면서 때로는 오페라를 관람하면서안데르센은 취업을 위해 불굴의 노력을 다하지만 그 어려움은 너무나 컸습니다. 안데르센 자서전에서 이 때의 고통을 안데르센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무도 큰 상처를 받았다.코펜하겐에서 내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거나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이 절망의 나락에서 헤어날 길은 오로지 죽음밖에 없을 듯 했다. 나는 하나님을 찾았다.어린아이가 아버지에게 매달리듯 한줌의 의심도 없이 하나님의 손을 잡고 ..
나흘여정도 쉬고 이제 복귀합니다. 안녕하세요. 둘리토비 이민우입니다~^^지난 화요일 정도부터 감기몸살이 심하게 걸려서 특히 지난 수요일 저녁때는 퇴근하고 저녁을 먹자마자 잠을 잘 정도로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근하지 않고 회사는 꼬박꼬박 출근하고 퇴근했습니다. 주말, 토요일, 감기 몸살이 많이 회복되었습니다.비록 목소리는 좀 가라앉아 있지만 움직이고 하는 것은 별다른 무거움은 없네요^^ SNS를 일절 하지 않았습니다(페이스북, 카카오톡, 그외 각종 Social Network들) 그대신 독서에 집중하고 마음을 풍요롭게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은 약속까지 하면서 광화문을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물론 촛불집회까지 하면서 저녁, 밤시간때까지 있기엔 아직은 무리여서 점심식사와 티타임의 약속시간때에광화문과 서울 지하철 ..
인물 안데르센과 동화를 접하기로 했습니다. 북유럽에 있어서, 덴마크라는 나라에 있어서, 전세계의 아동문학의 대부로 추앙받는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1805~1875) 출판사 전무이셨던 아버지의 영향으로어렸을 때 집안에 산더미같은 책이 있었습니다.물론 안데르센 동화도 그중에 있었어요.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안타까운 결말에(플란다스의 개에서 네로와 파트라슈의 마지막도 그러한데)"엄마 왜 이 소녀가 죽어야 하는거야?"하면서 울던 기억이 나는군요. 슬픈 동화가 제 맘속에 정말 큰 감수성을 심어주었던 기억, 지금도 생생합니다. [인어공주]가 결국 물거품으로 변하는 그 슬픈 이야기에 밤잠을 못 이루었던 그 감수성도 여전히 기억납니다.그래서 월트 디즈니에서 "인어공주" 애니메이션이 나왔을 때, 해피앤딩으로 끝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