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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독처무자기(獨處無自欺), 그리고 다산 정약용 독처무자기(獨處無自欺). 이 말의 뜻은 "혼자 있을 때 더욱 자신을 속이지 말라"는 말로 조선전기 명종임금때의 문신이었던 임권 선생께서 "해동소학"에 남기신 말씀입니다. * 참고 해동소학은 "우리나라 소학"이라는 뜻으로 원래 이름은 《해동속소학(海東續小學)》, 중국 송나라때 주자(주희)의 소학집주 편찬의 원칙을 반영해 조선시대 명인들의 문집-고사를 경구, 언행을 간추려서 편찬한 책, 그것의 진면목을 보인 분이 조선후기의 대가인 다산 정약용 선생이었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18년 이상의 유배생활 가운데서의 극도의 폐쇄되고 통제된 어려운 순간들 가운데서도 끝까지 자신을 지켜낸 분입니다. 이 기간 가운데서 오늘날에도 전해지는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등의 다산 3대서적을 포함한 약 500여권..
비폭력대화와 생존독서 2018 러시아월드컵의 한국,스웨덴전과 관계없이전 그 시간 "비폭력대화"책과 "비폭력대화 워크북"으로7월6일부터 있는 NVC1단계 과정을 대비해 미리 책을 읽고"비폭력대화"에 대한 학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지난 주, 그리고 주말의 시간을 거쳐서월요일 퇴근후 방금전까지,전 몇몇 권의 책을 읽으면서 내면의 외로움을 고독으로 변화시키는 작업,그 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즉 저는 지금 "생존독서"를 하고 있습니다. 독서를 통해서 저 스스로가 조금씩 성장하고 삶의 관점을 키우게 되는 독서,"생존독서"에 대한 여러가지 정의가 있지만 제가 정리한 관점은 이렇습니다. 일상의 커뮤니케이션에서 보다 경청하고 공감하고 말을 하는 경우에도 진심과 상대를 배려함으로서 나오는 말을 구사하고 표현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책..
다산 정약용의 즐거움과 괴로움(1) 다산 정약용 선생에게 있어서즐거움과 괴로움, 즉 기쁨과 슬픔의 부분은 연속적으로 교차된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꼭 다산 선생뿐만 아니라, 저를 비롯한 모두에게 있어서즐거움과 괴로움, 기쁨, 슬픔은 인생 전체에서 교차하는 것이고언제든지 자기 자신에게 찾아오는 부분이 되겠죠. 그렇기에 옛말에서부터"슬픔은 기쁨의 씨앗이요, 기쁨은 슬픔의 모태이다"이런 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그 부분이 다산 선생에게 있어서 일찍 찾아들게 된 일이 있습니다. 1792년 3월 20일 - 홍문관록에 뽑힘(31세)1792년 3월 29일 - 홍문관의 학사 벼슬인 수찬에 제수 다산은 홍문관의 수찬에 임명되자 홍문관 학사로서 수시로 경연에 들나들었습니다. #경연 : 임금과 신하들이 함께 앉아 정치와 학문을 토론하던 자리 당시 남인..
다산의 첫 한시 "산(山)" 1762년 태어난 다산 정약용,1765년 다산의 나이 네 살, 아버지로부터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합니다1767년 다산의 나의 여섯 살,아버지가 경기도 연천의 현감으로 부임하게 되는데 아버지를 따라가서그곳 연천에서 아버지로부터 교육을 제대로 받게됩니다 그리고 다산의 나이 7세때(1768년)아버지의 훈육을 잘 받은 다산은 처음으로 한시를 짓게 됩니다. 바로 "산(山)"이라는 한 시입니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렸네(小山蔽大山)멀고 가까움의 지세가 다른 탓이지(遠近地不同)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하고 특히 아버지가 많이 기뻐하고 기특하게 여기게 되었는데당시 연천 현감이었던 다산의 아버지는 "분수와 소장에 밝으니 산수 같은 학문에 통달할 것이다"라고 말하게 됩니다. 후에 다산은 말 그대로 수리학과 과학적 사고가 ..
민생과 국법의 중함 다산 정약용 선생은 1794년 음력 10월 말~11월 15일까지보름의 시간동안 암행어사 임무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습니다 네 개 고을(경기도 적성, 마전, 연천, 삭녕)의 당시 피폐한 농촌을 보면서다산의 마음에 자리잡힌 생각은"이런 상태로 두어서야 나라가 되겠는가""이러다가는 나라가 결국 망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이 생각에 사로잡히고 새로운 소명감에 두 손을 불끈 쥐게 됩니다 특히 전 연천현감 김양직, 전 삭녕군수 강명길의 엄청난 비리를 밝혀내지만,당시 이들이 임금(정조)의 최측근이란 이유로 불문에 부친다는 소식을 듣고,마음속에 끓어오르는 의분에 떨면서 상소문을 올리게 되는데이 상소문을 통하여 다산의 생애 가운데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통치 철학과 경세 논리를 얻어낼 수 있습니다 이..
다산 정약용 평전을 읽으면서..... 6월초부터 이제까지 '리영희 평전"을 읽고 완독했습니다. "시대를 밝힌 사상의 은사"라는 표현이 정말 잘 어울릴 정도로실로 파란만장한 80여년의 삶을 살다 돌아가신 분,그 책을 읽으면서 군사독재시절의 치부와 그에 따른 분노의 마음....이것이 강렬하게 느껴지더군요. 추후에 "북토크" 카테고리에 서평을 올려야 하겠죠, P.S : 그 동안 다양한 책들을 많이 읽었는데 저의 게으름으로 서평을 올리는 것이 많이 늦어지고 있네요. 조금씩 추가하려구요 그리고 이미 리영희 선생보다 앞서 시대의 최고 학자이면서각종의 고초를 당하고 긴 유배생활을 했지만 지금 이 시대에도 정말 큰 귀감이 되시는 "다산 정약용 선생" 이제 그 분의 삶에 당분간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이전까지 읽던 "리영희 평전"(김상웅 지음, (주)책으로보..
다산 평전, 그리고 청백리를 생각합니다 페이스북에 저 스스로를 소개하는 프로필 글에서 전 이런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핀란드, 북유럽 덕후 그리고 다산(정약용)앓이" 고등학교 때,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 매년마다 약 5월 정도에는 "다산문화제"가 있었습니다.당시 구리, 남양주 지역에서 매년마다 이 다산문화제를 개최하고 실행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기에다산 정약용 선생에 대해서 비교적 어릴 때부터 인상적으로 받아들였던 기억이 납니다. 7개월여전, 제가 왼쪽 발목의 인대파열로 6주를 쉬는 가운데 거의 마지막의 때에경기도 남양주시 능내리에 있던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적지를 방문했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을 닮아가기를 소망하며 (http://doolytubbies.tistory.com/247)다산 유적지 견학기 1 (http://doolytubbie..
다산 유적지 견학기(2) 다산 유적지 견학기 두번째 이야기입니다~^^어느덧 다산앓이(?)에 빠진 저입니다.정말 200년전으로 가서 1816년 6월,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정약용 선생에게 가서여러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또 듣고 그런 시간을 가지고 싶네요~ 암튼 두 번째 견학기를 시작해 봅니다~^^오늘도 비교적 상세한 설명을 더하려 합니다(다시 점검하고 보니 모든 사진마다 그러지는 못했군요~) 정약용 선생의 동상입니다.특이한 것은 앉은 동상에 책을 펼쳐 놓은 모습입니다.얼마나 정약용 선생이 책과 함께 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12년의 관직생활, 그리고 18년의 유배생활, 그리고 만년의 18년,이 30년의 시간 가운데서 정약용 선생은 독서와 학문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고 늘 정진했습니다.즉 이 동상은 정약용 선생의 평소의 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