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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끄적거림~

첫 노동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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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 월드컵이 성황리에 열리던 때,

저는 대학공부와 졸업 후, 여러 실패를 겪는 때였습니다.


영어학습지회사 본사 교재개발팀(상호명은 밝히지 않습니다)에 있다가

음악출판사 지사 창업을 한다고 당시 안정적이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처음으로 은행 신용대출을 받아서 지사장으로 일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장미빛 전망에 치우치던 저는 하나도 일이 잘될리가 없었죠.


결국 깨끗하게 돈을 말아먹고, 아무런 것도 남아있지 않았으며

처절한 실패의 후유증이 제 몸과 마음을 갉아먹고 있던 때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 작은누나와 작은누나의 매형이 저의 딱한 사정을 전해듣고

좀 힘들겠지만 철강일을 해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저는 무작정 일을 한다고 하였고 주6일의 매우 강한 업무환경에서

"첫 노동"의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은 경기도 부천, 그리고 경기도 시흥시 시화산업단지에서서 말입니다.


<NC펀칭기계>


<NC펀칭작업으로 제가 담당한 타공작업의 결과물예시>


이미 마련된 여러가지 모양의 철판에 컴퓨터로 식을 작성해서 철판에 타공작업을 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했습니다.

좋았던 것은, 이 일은 저만 작업을 했기에 다른 이들로 부터 간섭을 받지 않았고 저의 작업량만 채우면 되었습니다.



큰 사고없이 무사히 노동을 진행할 수 있었고, 몆 년동안 저에게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감당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아크용접과 CO2용접까지 배울 수 있어서 비록 용접기술사의 자격증은 취득하지 못했지만

다양한 철골구조의 뼈대를 세우고 연결하는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배우게 되는 산소절단작업까지 익히게 되서 

수많은 강판을 자르고 모양을 만들고 여러가지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약 3년 정도 진행한 이 노동의 추억이 워낙 고된 작업이고 안전을 최우선해야 하는 위험한 현장에서의 작업이었기에

이 때의 기억은 십 수년여 전의 일이었지만 여전히 제게는 강렬하고도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잡혀 있습니다.


"노동"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의 일을 다양하게 체험한 저로서 

노동의 개념은 저에게 중요한 개념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노동자"에 대한 시선에서 보다 복합적인 관점으로 생각하게 되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했습니다.



대한항공 노동자들 500여명이 1차로 광화문에서 촛불집회를 가졌습니다.

적극적으로 이들을 응원하면서 저도 제가 있는 곳에서의 노동자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겠습니다

#다행히 제가 속한 곳은 어떠한 노동갑질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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