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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빵의 쟁취"-우리는 모두 좋은 삶을 살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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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좋은 삶"일까 생각해보면,

참 막연한 현실의 모습이 먼저 오버랩됩니다.


다행히 저에게 있어 감사한 것은 

취업 걱정과 돈에 대한 그리 큰 걱정은 없지만,

뉴스를 볼 때마다, 그리고 인터넷을 볼 때마다

불우한 현실로 인하여 울부짖는 사람들의 모습이 늘 가슴아픕니다.


그들에게는 

부당한 착취로 인한 을의 서러움이 있고,

열악한 노동의 현실 가운데서 몸과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있고,

때로는 억울한 죽음까지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왜, 이런 경우들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을까요?




<빵의 쟁취,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저, 여연, 강도은 공역, 행성B잎새>


130여년 전의 이 러시아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할 권리'가 아니다"

"우리가 선언할 것은 '좋은 삶을 살 권리'이고 모두가 좋은 삶을 살 권리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중점을 두고 강조하는 것중, 두 가지 부분이 있는데

하나는 "기본소득"이고, 하나는 "무료주택"의 부분입니다.


자본주의의 체질화된 논리에서는 "노동""임금", 그리고 구성원들의 "일상"이 철저하게 연계됩니다.

그리고 그 자본주의에서 소수의 자본가들의 독식과 생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노동"이 착취당하고

노동으로 인한 정당한 "임금"이 주어지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으면서 사람들의 "일상"이 파괴되는 현실,

이 현실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또 반복되는 가운데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 크로포트킨은 또 이렇게 언급합니다.


한 사람의 노동을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 노동에 대한 보상을 한 사람이 온전히 소유하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그렇기에 "임금"제도가 노동의 댓가일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임금 제도는 인간이 존엄성을 짓밟는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130여년 전에 아직도 주된 직업의 형태인 "농업"에 관해서

도시농부의 개념을 언급하면서 모두가 조금씩 농부인 사회,

이런 사회를 꿈꾸게 됩니다. 크로포트킨이 바라던 이상적인 사회였습니다.


 

물론 크로포트킨의 견해에서는 "모두"라는 것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지나치게 낙관적인 견해가 이 책의 가운데서 적지 않게 언급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고,


현 시대 "협동조합"이라는 노동과 삶의 가치, 그리고 자본의 착한 융합의 부분을 미처 알지 못했기에

노동의 가치를 측정하고, 노동으로 인해 파생되는 효과와 노동의 미래를 제시하는 부분에까지는 

현실적 한계의 모습도 분명히 보입니다.


그렇지만 본질적인 부분으로 극소수의 자본가에게 휘둘리는 삶이 아니라,

스스로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한 사람으로서의 삶의 가치를 지니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강렬한 염원을 

저자인 크로포트킨은 표현하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몆 시간동안 생산적인 노동을 한 후에는 문명사회의 모든 즐거움을 누릴 권리를 가질 수 있고.

원하는 모든 사람이 예술과 학문이 제공하는 깊은 즐거움을 누릴 권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면, 

어느 누구도 굶주림을 겨우 면할 정도의 임금을 벌려고 자기 노동을 팔지 않을 것"


정말 이상적인 사회이죠?

사실은 굉장히 단순한 사회의 구조인데,

그것이 너무나 힘든 현재의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핀란드 여행때 가장 행복했던 순간, 투르크 대성당 앞에서, Photo by 따루>


이 "빵의 쟁취"라는 책이 비록 100% 완벽한 논리구조를 갖춘 책이 될 수는 없겠지만

"좋은 삶을 살 권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수 있었던 책이었고 독서의 시간이었습니다.


당신의 "좋은 삶"이란 무엇을 의미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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