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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

생각해 볼 만한 글(핀란드역으로 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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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적이고 역사적 의의가 있는 서적인 

"핀란드역으로"라는 책에서 본 내용에 앞서서 쓰여진 서문,


그 책의 서문을 쓴 루이스 매넌드 교수(뉴욕 시립대학 대학원센터 영문학 교수)의 

글 가운데서 곱씹을 만한 내용이 있어서 여기 인용해 봅니다.


새로운 대통령을 맞이하게 되고

새로운 여러가지의 변화를 체험하는 가운데서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적폐로 인한 혼돈과 


특히 SNS로 퍼지는 

일명 한경오라 하는 언론사에 대한 비판과 증오가 쏟아지는 현실,

(여기서 한경오는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오마이뉴스를 지칭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불려지는 것을 싫어합니다.


엄중한 시대적 상황 가운데서 "일상적 삶"에 대한 강렬한 다짐을 하면서

여기 소개되는 글을 읽고, 또 읽고 저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핀란드 역으로- 에드먼드 윌슨 지음, 유강은 옮김, 이매진>



사람들은 세계를 앞으로 움직이는게 아니라 제자리에서 돌게 만들고자 한다. 반면 현대 사회에서는 삶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삶의 목표가 주어지지 않는다. 삶의 목표는 만들어내거나 발견해야 할 것으로 간주된다. 집단의 관습과 관행의 재생산은 

이제 존재의 주된 목표가 되지 못한다. 사람들은 세계를 되풀이하는 게 아니라 변화시키려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려고 한다.


평범한 삶의 관행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제 누구나 그런 관행은 우연적이고 한 시대에 국한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죽음이 두드러진 금기이자

부조리,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제 사람들은 삶이 끝을 맺는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면서

태어날 때 정해진 할 일을 마무리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앎은 언제나 저 앞에, 역사의 지평선 너머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다.


현대 사회는 긴 안목으로 보면 결국 무엇이 삶에서 소중한 것으로 판명될지 알지 못한다. 

결국 어떤 삶이 존경받을 자리에 서게 될지를 알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죽음이 가져다 주는 단 하나의 확실한 앎은 

한 사람이 보낸 시간의 가치, 삶을 살면서 나름대로 지키려고 애를 쓴 가치는 지울 수 없다는 것 뿐이다.    


- "핀란드역으로" 서문 중



조금만 더 진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가야할 길이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서로를 부축여서 끌어안고 가기에도 벅찬 지금의 엄중한 시간에서 


누구나 한 명, 한 명이 의미있는 역사를 만들어가야 할 이 천금같은 시간

무엇을 위해서 그 아까운 내면의 에너지를 상대를 비난하고 헐뜯는데 낭비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지금의 상황들을 특히 SNS의 부분들을 보신 분들께서는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그 비난의 대열에 동참하지 않고

그 유명한 얀테의 법칙을 기억하며 "일상적 삶"을 경주할 것임을 다짐합니다.



<얀테의 법칙>


P.S : 10가지까지 언급한 다음, "그리고"가 붙으면서 마지막 11번째가 언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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